엄마들의 방

산부인과 의사를 죄없는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

| 2012.02.17 12:00 | 조회 1729

[독자칼럼] 산부인과 의사를 죄없는 죄인으로 만들지 말라

곽미영(이화다나 산부인과 원장)




'응애!' 산부인과 전문의가 되어 처음 핏덩어리 아기를 받아들고 느꼈던 새 생명 탄생의 그 벅찬 순간은 지금도 산부인과 의사의 길을 가면서 지치고 힘들 때마다 필자를 다시 일어서게 하고 지켜주는 유일한 힘이 되고 있다.

아마도 많은 산부인과 의사들이 원가 70% 보전이라는 저수가의 악조건 속에서도 온갖  위험을 감수하면서  꿋꿋이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는 것은 바로 이 신성한 새 생명의 탄생을 책임지고 있다는 자긍심과 아무도 할 수 없는 가장 신성한 일을 하는 의사라는 자존심일 것이다.

분만이란 새 생명 탄생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 하나로 산모의 건강은 물론 태아의 건강과 안녕을 동시에 관리해야 하는 매우 어렵고 힘든 과정이다. 따라서 이를 담당하는 산부인과 의사는  매 순간순간 긴박한 상황을 그때그때 산모와 태아의 상태를 동시에 고려하며 순탄한 분만이 이루어지도록 밤을 새워가며 최선을 다한다.

이러한 과정을 책임지려면 고도의 의학지식은 물론 정확한 판단과 결단력을 겸비해야함은 당연하다. 산부인과 의사는 상당한 학습량은 차치하더라도 숙련된 산부인과 의사가 되기 위한 고도의 훈련과 각고의 노력이 요구된다. 무엇보다도  산부인과 의사로서 사명감과 자긍심은 어떠한 어려움 속에서도 이들의 자릴 지킬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최근 의료분쟁조정법의 하위 시행령 입법 예고안이 발표되었다. 그동안 의료계에서는 이 법의 여러 문제점과 부당성 및 하위 시행령 마련에 대한 여러 의견을 제시했다. 특히 불가항력적 무과실 보상제도의 재원 부담 문제의 불합리성에 대해 의료계의 명확한 의견을 여러 통로를 통해 수차례 전달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간의 의료계 의견을 무시한 채 원안 그대로 시행령이 마련되었음을 보고 정말 실망을 금할 길이 없다.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 보상제도는 의사의 잘못이 없이 불가피하게 일어난 불행한 상황에 처한 환자, 즉 국민을 나라가 도와주고자 마련된 법이다. 법령에 적혀진 말 그대로 불가항력적 무과실 의료사고는 그 누구에게도 책임이 없는 상황에서 일어나는, 인간으로서는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불행한 상황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면 환자는 물론 죄 없는 담당 의사는 환자를 잃은 슬픔에 얼마나 가슴 아프고 안타까운  지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즉 의사와 환자 모두 불행한 피해자일 뿐인 것이다.
 
이번에 발표된 산부인과 분만의에 대한 불가항력적 무과실 보상재원 50% 부담이라는 하위 시행령 입법 예고안은 산부인과 의사가 분만을 할 때마다 분만이라는 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뜻으로 해석된다. 즉 신성한 새 새명의 탄생 과정을 죄를 짓는 행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의료라는 것이 생명을 다루는 일이라 그 어느 직업보다 가치를 두며 의사들은 그로 인해  존경을 받는다. 동시에 이에 따른 책임이 매우 엄중하다. 의사 또한 어쩔 수 없는 인간이기에 원치 않는 과실을 범할 수 있으며 이에 따른 책임을 감수하며, 그 죄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당연하다. 우리나라는 엄격한 과실책임주의 원칙의 나라이다.
 
그러나 단지 새 생명의 탄생 과정을 돕고 지켜주어야 한다는 이유로 죄 없는 죄인이 되어 불가항력적 무과실배상까지 책임져야 한다면 이는 산부인과 의사의 존재 가치와 명분, 또 어려움 속에서도 묵묵히 자신의 길을 갈 수 있었던 산부인과 의사들의 자긍심과 자존심을 빼앗아 버리는 것이다. 더 이상 이 어려운 산부인과 의사로서의 길을 버텨나갈 힘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저수가와 저출산이라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분만이라는 성스러운 직업을 택한 것이 죄라면 이 땅에서 그 누가 분만을 계속할 수 있을까? 산부인과 의사들도 환자와 마찬가지로 한명의 국민이며 똑같이 보호받고 모든 법 앞에 공평한 대우를 받아야 하며 그럴 권리가 있다.

산부인과 의사는 분만을 한다는 이유로 남들보다 더 칭찬 받기를 바라지도, 그래 본 적도 없다. 다만 열악한 상황에서도 태어나는 새 생명의 첫 울음 소리에 기뻐하며, 그들을 위해 땀 흘리는 것을 보람으로 묵묵히 자신의 일을 천직으로 알고 수행해 가고 있을 뿐이다. 이제 더 이상 국가가 담당해야 할 일을 몇몇 의사들에게 부담 짓는 일은 없어야하겠다.

현대판 인두세의 부활을 예고하는 이번 의료분쟁조정법의 하위 시행령 입법예고안을 보면서 어렵게 탄생한 본 법의 기본 취지를 퇴색 시키지 말았으면 한다. 제발 이 땅의 산부인과 의사들이 자긍심과 자존심을 잃지 않고  새 생명의 탄생을 지키며 환희에 찬 분만을 계속해 나갈 수 있도록 의료계의 의견을 받아들여 하위 시행령제정을 재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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