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방

산부인과의 미스터리 - 사산

| 2011.11.18 01:00 | 조회 2296
 

<산부인과의 미스터리 - - 사산>

연간 2만6000건, 출생 후 1년내 사망과 비슷 연방환경청의 해양과학자인 마가렛 히버(46)는 지난 98년 첫 아이를 사산했다. 출산 예정일 며칠 전 뱃속의 아이가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 그녀는 의사를 찾아갔지만 별다른 문제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이틀 후 그녀는 고열과 통증으로 잠을 깼다. 병원 의사들은 처음엔 태아 모니터기에 이상이 있을 것이라며 두 번째, 세 번째 모니터를 사용했지만 결국 아이의 심장박동이 멈추었음을 확인했다. 여아를 사산한 날 밤 의사는 손으로 머리를 감싸쥐고는 '알 수 없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이후 수주 동안 유전자 분석과 호르몬 검사, 혈액 검사와 심지어 부검까지 했지만 아무도 히버에게 이유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 '더 이상 이런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 히버는 의학서적과 도서관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년 수천 명의 아기들이 태어나기 직전 죽어가고 있음을 발견했다. 하지만 사산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는 별로 없었다. 이제 히버의 노력에 의해 국립아동건강 및 인류발전기구(NICHD)가 사산을 최우선 연구과제로 삼기에 이르렀다. NICHD의 캐시 스퐁 박사는 '사산은 연구가 절실한 문제'라면서 '사산되는 아기들의 숫자를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비록 미국에서 사산율은 1960년대에 비해 감소하긴 했지만 아직도 1년에 2만6,000명의 아기들이 태어나기 전에 숨을 거둔다. 이는 생후 1년 안에 사망하는 아기들의 숫자와 맞먹는 수치다. 사산이 유아급사증후군(SIDS)보다 5배 많다는 사실을 밝혀낸 연구 결과가 있지만 많은 부모들은 히버처럼 아직도 무엇이 잘못돼 자신의 아이들이 사산됐는지 알지 못한 채 평생을 보내야 한다.

과학자들은 어떤 임산부가 사산의 위험이 있으며 어떻게 하면 막을 수 있는지도 정확히 알지 못한다. 왜 흑인 여성이 다른 여성들보다 2배의 위험을 지니고 있고 엄마가 사산 경험이 있었던 여성이 사산할 위험이 더 높은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심지어 사산에 대한 통일된 정의도 없다. 그냥 대부분의 의사들이 임신 20주 이후에 아이를 잃는 경우를 사산이라고 일컬을 뿐이다. 기술적으로 말해 많은 임산부들이 예정일이 가까운 만삭 때 사산을 하지만 사산된 아이들은 아기로 여겨지지 않는다. 한번도 바깥의 숨을 들이쉰 적이 없기 때문에 태아라는 딱지가 붙고, 그나마 세상에 태어난 순간 곧바로 잊혀지고 만다. 출생증명서도 받지 못하고 그냥 태아 사망증명서만 얻을 뿐이다. 그러나 과학자들은 사산에 대한 연구가 임신, 출산과 선천성 결함에 대해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해줄 것이라고 기대한다. 그리고 국립보건소가 사산을 최우선 연구과제로 선정함으로써 이제 그동안 산부인과의 과학자들을 사로잡아온 문제, 즉 유아급사증후군과 비슷한 조건들이 사산의 원인인지 여부를 본격적으로 탐구할 수 있게 되었다. 이를 위해 NICHD는 이미 전국의 산과 의사들과 부인과 의사들을 상대로 설문조사에 들어갔다. 하지만 해답을 찾기 위해서는 갈 길이 멀다. 오랫동안 사산을 비밀스럽게 취급해온 관례와 사산을 터부시하는 분위기를 우선 극복해야 하기 때문이다. 오랜 세대에 걸쳐 간호사들은 사산아들을 산모에게 보여주지 않고 얼른 분만실 밖으로 안고 나왔으며 병원들도 대부분 병리적인 현상으로 사산아들을 처리해 왔다. 또한 사산을 한 산모들은 상처가 크고 또 감정적인 반응을 보이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정보를 제 공해 주기 힘들다고 단정해 연구 대상으로 삼기를 꺼려해 왔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사산은 산부인과의 미스터리 중 하나로 남아 있다.

하버드 의대의 루스 프레트 박사는 산모의 비만, 35세 이상의 노산 혹은 첫 아기일 경우 사산의 위험이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다른 연구들은 흡연을 원인으로 시사하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 사산을 했던 많은 여성들이 이들 범주로 분류되지 않는 문제가 여전히 남는다. 지난해 NICHD가 개최한 사산에 관한 첫 학회에서 스퐁과 산모건강 전문가인 매리언 윌링거는 긴급한 문제들을 토론 주제로 상정했다. 과학자들은 유아급사증후군과 사산 사이에 연관관계가 있는지를 알아내고 싶어한다. 또 사산을 초래할 수 있는 혈액응고 장애, 혈소판 감소에 대해 더 밝혀내고 생물학적, 유전적 요소들을 알아내 사산을 예방하고자 한다.

사산에 집중하는 몇 안 되는 연구 프로그램의 하나인 위스콘신 사산 서비스는 지난 19년 동안 의사와 간호사들을 표준 지침서에 따라 훈련시켜 1,900건의 사산에 대한 평가자료를 만들었다. 위스콘신 매디슨 대학의 소아과 및 유전학 교수인 리처드 폴리 박사는 그 자신 사산으로 아들을 잃은 후 이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며 조사한 사산 사례 중 50% 정도가 원인불명임을 알아냈다. 25%는 선천성 결함 및 유전적 질환, 기형 등 태아 때부터 원인을 지니고 있었고, 다른 사산의 경우들은 태반의 부실, 산모의 감염과 탯줄 사고 등에 의한 것이었다.

 

한국일보 2002.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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