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방

인공수정

| 2010.09.12 13:00 | 조회 2180

 

인공수정

 

 

부여의 왕 해부루에게 있어서 가장 부러운 것은 커다란 영토도 막강한 권력도 아니었다. 그는 이미 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세상 모든 것을 가진 듯한 그에게 없는 단 한 가지는 이 모든 것을 물려줄 후계자였다. 늙도록 자식이 없어 애를 태우던 해부루왕은 결국 천지신명께 큰 제사를 올려 아이를 기원했다. 제를 올리고 곤연 연못가를 지나 돌아오던 해부루는 갑자기 발걸음을 멈추었다. 갑자기 그가 탄 말이 연못가의 큰 바위 앞에 멈추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닌가. 이를 기이하게 여긴 해부루왕이 신하들을 시켜 바위를 치우게 하자 놀랍게도 황금색의 살갗에 개구리를 닮은 사내아기가 나타났다. 해부루왕은 자식을 원하는 자신의 소원을 하늘이 들어준 것이라 생각하여 크게 기뻐하며 아이를 데려다 태자로 삼으니 그가 바로 훗날 금와(金蛙)왕이었다. - 부여의 '금와왕 설화' 중에서

 

 

 

보조생식술에는 인공수정과 체외수정이 있다

아이를 원하지만, 아이를 갖지 못해 눈물짓던 부모들은 예나 지금이나 있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알지 못했던 시절에는 그저 한없이 기다릴 뿐이었습니다. 기다림의 정성이 하늘에 닿으면 아이를 얻을 수 있다고 믿으며 말이지요. 하지만 기다림의 간절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이가 태어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 바탕이 필요하니까요. 그래서 발전한 분야가 탄생을 돕는 보조생식술의 발전입니다.

 

보조생식술이란 생식세포, 즉 엄마의 난자와 아빠의 정자를 채취 및 조작하는 과정에 관련된 모든 시술을 통칭하는 말로, 크게 인공수정(artificial insemination, AI)과 체외수정(in vitro fertilization-embryo transfer, IVF-ET)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인공수정이란 정자를 성관계가 아닌 다른 방법을 이용해 여성의 자궁 깊숙이 직접 넣어주어 수정이 좀 더 쉽게 일어나도록 유도하는 것이고, 체외수정이란 난자와 정자를 모두 채취하여 체외에서 수정시킨 뒤, 수정이 일어난 수정란이나 배아를 자궁에 이식하는 방법입니다. 즉, 인위적으로 임신을 유도하는 것을 보조생식술이라고 하는데 그중에서 난자와 정자가 만나는 곳이 엄마의 몸 속이면 인공수정, 몸 밖의 시험관이면 체외수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인공수정의 발전은 동물의 품종 개량에서부터

오늘은 그중에서도 더 먼저 시작된 인공수정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지요. 유전의 원리를 알지 못했던 시절에도 사람들은 특정 형질을 가진 동물들을 교배시키면 역시 특정 형질을 가진 새끼가 태어난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이용해 사람들은 오래전부터 육종이나 품종 개량을 해 왔습니다. 특히나 동물의 품종 개량에서 사람들이 주목한 것은 수컷의 정액이었습니다. 정액 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는 정확히 알지는 못했지만, 수컷의 정액을 받아 암컷의 자궁 속에 넣어주기만 하면, 굳이 교미하지 않아도 새끼가 태어난다는 사실은 알고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오래전부터 아라비아 지방에서는 암말의 질 속에 솜을 넣어두고 수말과 교미를 시켰다가, 이 솜을 꺼내 다른 암말의 질 속에 넣어 수정을 유도하는 초보적인 형태의 인공수정 방법이 사용되었다고 합니다.

 

풍문처럼 들리던 동물의 인공수정 방식이 확립된 것은 1780년에 스팔란차니(Spallanzani)가 개의 정액을 이용해 강아지를 탄생시킨 이후입니다. 이후 동물의 인공수정은 경제적이고 간편하게 좋은 품종의 가축을 육종하는 방식으로 받아들여 널리 쓰이게 되었고, 개뿐만 아니라 소·말·돼지·양 등 다른 가축에게도 널리 사용되었습니다.


 

1952년에는 폴지(Polge)와 로손(Rowson)에 의해 정자는 냉동 보관했다가 해동시켜도 생식력을 잃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본격적인 가축의 인공수정 시대가 열립니다. 얼린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은 수컷을 이동시킬 필요가 없고, 암컷이 발정기가 될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수시로 정액을 채취할 수 있기 때문에 곧 널리 보급되었지요. 실제로 소의 경우, 종우(種牛) 한 마리가 자연교미로 수태시킬 수 있는 암소는 1년에 50여 마리에 불과하지만, 동결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의 경우 수만 마리까지도 수태시킬 수 있다고 합니다. 이처럼 동결 정액을 이용한 인공수정 방법은 저비용으로 고효율을 보장하기 때문에, 현재 많은 나라에서는 세심하게 선별되고 특수하게 관리된 종우·종마·종돈 등을 이용해 가축을 번식시키는 방법을 자연교미법보다 더 널리 사용하고 있답니다.

 

 

현재 가축은 대부분 인공수정을 통해 태어난다

우리나라에서는 1954년 처음 이용빈 등에 의해 인공수정 기술이 도입된 이후, 1955년 중앙축산기술원에서 돼지의 인공수정이 실시되었습니다. 이후 국가적인 차원에서 가축의 개량을 목적으로 인공수정이 널리 보급되고 장려되었는데, 현재는 농업중앙회에 젖소개량부와 한우계량부가 있어서 우수한 종우(種牛)들의 동결 정액을 전국적으로 보급하고 있답니다. 보통 다 자란 소 한 마리의 가격이 300만 원 안팎에 형성되는 것과는 달리, 품질 좋은 우수한 종우들의 경우 마리당 가격이 3억을 호가합니다. 특히나 소의 경우, 현재 자연적인 교미로 인한 번식은 거의 사라진 상태입니다. 이미 1999년에 한우의 74~86%, 젖소의 99%가 인공수정으로 태어났다고 하니 가축에게 있어서 인공수정은 매우 일상적인 일입니다.

 

사람에게 시도되는 인공수정 역시 기본 개념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1677년 네덜란드의 안톤 판 레이우엔훅(안토니 레벤후크, Antonie van Leeuwenhoek, 1632~1723) 은 자신이 만든 현미경을 통해 처음 정액 속에 든 정자의 존재를 관찰한 뒤 이를 그림으로 자세히 그려 남겼습니다. 이후 정자 속에 아주 작은 인간이 들어 있을 것이고, 이 ‘정자 인간’이 여성의 자궁으로 들어가 아이로 자라난다고 믿음이 생겨났지요. 더불어 정자 속에 인간의 씨앗이 들어 있다면, 성관계를 하지 않더라도 정자를 자궁 속으로 넣어주기만 하면 임신이 가능할 것이라는 믿음도 만들어졌고요. 이에 착안하여 1790년대 영국의 존 헌터(John Hunter, 1728~1793)는 생식기 기형으로 정상적인 관계를 할 수 없는 부부에게 남편의 정자를 주사기로 아내의 질 내부에 주입하는 초보적인 인공수정을 통해 임신을 시도했다고 합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인공수정이 18세기에 이미 시작되었으니 인공수정의 역사는 매우 오래된 편이지요. 존 헌터가 고안해낸 방법으로 인해 이 부부는 결국 임신에 성공했다고 합니다.

 

 

인공수정은 비교적 간편하고 효과가 좋다


인공수정은 배란기에 맞추어 정자를 가는 관을 이용해 자궁 속 깊숙이 넣어주기만 하면 되기 때문에 방법이 비교적 간편하고 그에 비해 효과는 좋은 편입니다. 특히나 정상적인 관계를 맺기 어려울 때뿐만 아니라, 정자 수가 적거나 운동성이 낮을 때 인공수정은 매우 효과적입니다. 일반적인 경우, 정자는 사정된 뒤 여성의 질을 거슬러 올라가 자궁을 지나 난관까지 가는 오랜 여행을 해야 하는데, 이때 산성(酸性)을 띠는 질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수많은 정자가 죽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1953년 셔먼(J. K. Shemen)이 인간의 정자 역시 동물의 것과 마찬가지로 동결 후에도 생식력이 보존되는 것을 밝혀낸 이후 인공수정은 급속도로 퍼지기 시작했지요. 1963년 국제유전학자회의는 냉동 정자를 통해 정상아의 출산이 가능함을 공식적으로 인정했고, 정자를 냉동보관하는 정자은행의 설립도 본격화되었지요.

 

우리나라에서도 1960년대부터 인공수정 기술이 도입되었고, 1985년 이후부터는 냉동 정자를 이용한 인공수정도 널리 실시되고 있습니다. 인공수정은 방법이 비교적 간단하여 산부인과 시설을 갖춘 병원이라면 어디서든 가능하기에, 소규모 개인산부인과에서도 이루어집니다. 또한 최근에는 임신 확률을 높이기 위해 여성에게 배란 유도제나 자궁내막의 증식과 임신을 유지시키는 약물을 이용해 성공률을 높이고 있습니다.

 

 

인공수정의 성공률은 25~30%정도, 자연 임신의 2배

보통 인공수정의 성공률은 약 25~30% 정도입니다. 얼핏 보면 성공률이 겨우 1/3에도 못 미치니 인공수정이 과연 효용성이 있는지 반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자연 임신의 성공률이 15% 정도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이는 꽤 높은 확률입니다. 즉, 배란기에 관계를 맺는다고 하더라도 임신할 확률이 15% 정도라는 것이죠. 하지만 같은 시기에 인공수정을 하는 경우 25~30%의 성공률을 보인다는 것은 임신 확률이 2배 정도 높아지는 것이니 충분히 효과가 있는 것이죠.

 

현대 과학기술의 발전은 이처럼 과거에는 그저 두 손 모아 기도하거나 운명처럼 받아들였던 일들도 원인을 밝혀 해결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람들이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해 대부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지요.

 

 

  

 

이은희 / 과학저술가
[하리하라의 생물학 카페], [과학 읽어주는 여자], [하리하라의 과학 블로그] 등 많은 과학 도서를 저술하였고, 2003년에 과학 기술도서상을 수상하였다. 연세대학교 생물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과학기술학 협동 과정에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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