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들의 방

손 꼭 잡고.....

김정례 | 2008.01.18 16:00 | 조회 1114

시골서 나고 자란 나는....그다지 많은 경험을 하지는 못했다.

내가 가지고 노는건...아빠가 사다준 인형 몇가지와..대나무 칼....그리고 고무신 정도....

내가 놀 수 있었던 곳 역시...항상 마당이거나....개울가....또는 논..밭...나무 위....이정도...

시내가 뭔지도 몰랐고.....밖에 뭐가 있는지도 몰랐다.

 

그치만..항상 여름이면 식구들끼리 작은아빠가 계신 부산으로 놀러를 가곤 했었는데....그때마다 비둘기호를 타고 갔다..
그땐 그게 비둘기혼지...통일혼지..뭐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 조차 몰랐지만...옆으로 길게 늘어선 초록색 좌석을 기억하면서..나중에 그게 비둘기호인지 알았다...

내 기억속에 부산은 엄청시리 먼 곳이었다..
나는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우리나라에서 부산이 제일 먼 곳인줄 알았다.
쬐끔 달리고 서고....또 달리다가 서고...또 서고..하면서..얼마나 오랫동안 가던지.....
시골에서 살며...차를 탈 기회가 거의 없던 우리로써는...해마다 여름..일년에 한번... 부산갈 때 기차 타는게 전부였는데...그때마다 멀미하고 토하고..난리도 아니였다.
그래서 항상 엄마는 기차안에서 먹을걸 미리 준비해가셨다....
그나마 뭐라도 먹으면서 가면...먹는데 정신팔려 멀미가 좀 덜할꺼라는 엄마의 생각이셨다....
감자찌고...고구마 찌고...옥수수 삶고....
우린..그게 당연한 건 줄로만 알았다.
부산 가는 날은 포식하는 날이였다.....그래서 우린 해마다 여름..부산가는 날을 기다렸다.

 

그러다 어느해......내가 유치원도 가기 전이니까...한 6살때 쯤인거같다.

그 해 우리들은 식구끼리 해운대를 찾았다......
그 바다....비록 어린 시절이었지만..아직도 기억이 또렷하다......우와~~ 좋다..시원하다.....이게 아니라...
옴마야..부산사람들 전부 여기 와있는 모양이네?? 엄마 손 놓치면 큰일 나겠다..아 더워...집에 가고 싶다...사람만 많고....뭐 대충 이렇게.....

역시나...나는 거기서 길을 잃었고...온집안 식구들은 나를 찾아..온 바다로..백사장으로 헤매이고 난리가 났단다.
지금도 방향감각이 없는 나로써는....거긴 모래사장이 아니라 미로였다....
여기도 모래...저기도 모래....앞은 그냥 바다...
이 파라솔이 우리껀지...저 파라솔이 우리껀지....
암만 봐도 그게 그거 같고...홀딱 벗은 차림의 남자들은 그옷이 그옷이고....엄마의 반팔티도 모든 아줌마들이 비슷비슷했고...
요즘에야 각양각색의 옷들이 넘쳐나서...똑같은 옷은 물론 비슷한 옷도 잘 없다지만...그땐..그다지 선택의 여지가 없었나보다...
아빠들은 거의 윗통은 벗고 비슷한 반바지에....엄마들은 한결같은 뽀글뽀글 머리에....한결같은 반팔티에 반바지....

도대체 엄마 아빠는 어디에 있는건지....찾아 가보면 낯선 사람이고...찾아 가보면 낯선 사람이고....

 

나는 그렇게 우리 파라솔을 찾아 여기저기 헤매이던 기억이 난다..
점심시간 전에 길을 잃은 나는....다 저녁때가 되도록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나중에 들은 얘기지만.....우리 파라솔에서 한참...정말 한참이나 떨어진...설마 애가 거기까지 갔겠냐 싶을만큼 한참이나 떨어진...저 구석 모래사장에서...어느 아주머니 옆에 붙어서..모래찜질 하는걸 열심히 덮어주고 있더란다.....
아빠 말로는..."하드 하나 사주께..이거 좀 덮어줄래?" 했는데..내가 좋다고 따라왔다고..그 아주머니가 그랬단다.
하루종일 얼마나 헤매이고 다녔는지..얼굴은 익어서 벌겋고....어깨와 팔은 허물이 다 벗겨지고....
그 와중에도 뭐가 좋다고...나는 웃어가며..그렇게 모르는 아주머니의 시늉을 들고 있더란다.....
울아빠가 그걸 발견하고는....정말 황당해서..할 말이 없더란다.
나중에 커서..나는 이 얘길 아빠에게 들었다...
그러고 보니....내가 어릴적 바닷가를 갔는데...어떤 아주머니 모래를 덮어주던 기억이 난다...
나중에..그 아주머니와 아빠랑 다투던 기억도 난다.

 

미아실종신고센터에 그렇게 찾아가고 신고도 했었는데...어만데 붙어 있었으니...신고가 들어갔을리 만무하고...
아빠는 아빠대로 화가 나서 소리 지르고...그 아주머니는 그 아주머니대로..그냥 놔두면 자꾸 혼자 엉뚱한데로 갈까봐..부모들이 곧 찾으러 오겠지 하며 일부러 한곳에 잡고 있었는데 오히려 큰소리라며 화를 내고....

그날...석양이 질무렵....아빠의 큰 손을 잡고 걷던 모래사장은...아직도 빛이 나던걸로 기억된다...
그렇게 아빠에게 구출(?)당한 나는....그뒤로..꽤 오랫동안 바다 구경을 못했다...
혹시나 또 잃어버릴까봐..부모님들은 아예 바다 근처에도 안가셨다.
그때마다 내 형제자매들은 나를 향해 성화였고.....나야 뭐..할말이 있나...그냥 가만 있을 수 밖에....


우리가 다시 바다를 찾은건...머리가 다 커서였다...
우리들의 머리가 다 커서...우리끼리 찾은 바다....그 어디에도 엄마의 찐감자는 없었고....뜨거운 태양아래 나를 찾아 땀방울을 흘리시던 아빠의 손길도 없었다.

지금은 이미 하늘에 터를 잡으신 아빠.......
엄마 역시 많이 늙으셔서......바다는 햇살이 너무 뜨거워 싫으시단다....

 

나는....어린시절로 돌아가서...한번만 더 내 엄마아빠랑..그때 그 해운대를 찾고싶다....

한번만 더 웃는 어린아이가 되어..아빠 손잡고 모래사장을 걷고 싶다....
엄마가 쪄주던 고구마도 먹고 싶고....옥수수도 먹고 싶고....
그렇게 멀미가 나던 비둘기호도 한번쯤은 더 타보고 싶다.....
그때 그 길을...나는 여섯살 어린아이가 되어..한번쯤은 더 가보고 싶다.....

 

올여름...나는 아이가 아닌 부모가 되어....내 아이들의 손을 잡고....그 바다를 한번 더 찾아 가보련다....
어린날 내 손을 잡아주시던 아빠 손처럼..절대 잃어버리지 않게 ...두 손 꼭 잡고서....
내 가슴에 계신 아빠와...엄마와....남편과..아이들과...그렇게 함께....나는 그때 그 바다를 보고 와야겠다.

내가 가는날....그때 그자리에....내가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아빠는 마중을 나와 계실것이다...

 

 

 

 

비가 와서 그러나.....

자꾸 옛날 생각이 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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